| 용강서원 | |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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◆ 용강서원(龍岡書院) ◆ 청도에 정착해온 밀양박씨(密陽朴氏) 문중의 그 현조(玄祖)인 충숙공 박익(忠肅公 朴翊)과 임란14의사(壬亂14義士)를 재향하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한 용강서원(龍岡書院)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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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금호서원 | |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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◆ 금호서원(琴湖書院) ◆ 이 건물은 임란 때 원균(元均) 휘하에서 옥포만호(玉浦萬戶)의 신분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워 경상우수사 겸 3도 수군통제사를 지낸 식성군(息城君) 이운룡(李雲龍1562∼1610, 보물제1212호참조)장군과 향산 이백신(鄕山 李白新)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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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자계서원 | |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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◆ 자 계 서 원(紫溪書院) ◆ 조선 초 문신이며 학자인 탁영 김일손(濯纓 金馹孫) 선생을 배향 하기 위해 중종13년(1518년)창건하고 운계서원(雲溪書院)이라 하였고 선조11년 중건하여 현종2년(1661년) 자계서원으로 사액(賜額)되었다. 고종8년(1871년)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동 . 서재만 남아 있다가 1924년 참봉 김용희(金容禧)가 중건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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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덕사 | |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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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소 : 경북 청도군 화양읍 소라길 16-107 ◆ 대한불교조계종 덕사(大韓佛敎曹溪宗 德寺)◆ 이 곳은 이서국(伊西國)때부터 천혜의 요새를 이룬 이서산성으로 신라에 복속 되기 전까지 신라(新羅)와 격전을 치르다 297년(신라 유례왕14) 이서국이 최종 패한 패성지(敗城地)이다. 이 덕사(德寺)는 청도의 정기(精氣)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1576년(선조9년)에 세운 사찰이다. 또한 개가 달아나는 현상이라 하여 주구산(走狗山) 주구산성으로 부르기도 하며, 개를 머물 개하기 위해 숲을 조성하여 범이 살수 있게 한 솔산, 솔이산성(率伊山城) 이라고도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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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대산사 | |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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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소 : 경북 청도군 각남면 옥산길 248-170 ◆ 대한불교조계종 대산사(大韓佛敎曹溪宗臺山寺) ◆ 화악산(華岳山)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월은산정에 자리잡은 이 사원은 신라 흥덕왕5년(830년)에 창건하고 목지국(目支國)에서 남해상에 표류해온 천수관음(千手觀音)불상 3구중 한 구는 운문사에 봉안하고 또 한 구는 간 곳을 알 수 없고, 나머지 한 구를 이곳에 봉안하여 용봉사(龍鳳寺)라 하였다. 임란 때 화재로 법당이 소실되고 천수관음불상은 왜적들이 도적질이 두려워 땅속에 묻었는데, 그 사실을 안 자가 고철로 팔려는 생각에 불상을 파내던 도중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전해지며, 임란 후 불상을 파내어 법당에 다시 봉안하고 고종13년(1876년) 왕후의 꿈에 부처님이 현몽(現夢)하여 많은 시주를 하고 절을 중건하였던 사원을 다시 의문화상(義文和尙)이 중수하여 대산사(臺山寺)라 개칭하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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